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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에 '아들' 5명 둔 경영학부 정연앙 교수의 '큰 사랑'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09.25 조회 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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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한 놈이 최근에 가출했어요. 사춘기라 그런가…, 연락만이라도 됐으면 좋겠는데…."

중앙대 경영학부 정연앙(56) 교수는 낮은 목소리로 A(18)군 얘기를 꺼냈다. 서울 은평구 은평천사원에 사는 A군은 정 교수가 11년 전 만난 '아들'이다. "같이 살아야만 가족인가요? 저에겐 다 똑같은 아들입니다. 속상해 죽겠어요"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수심이 깊어졌다.

정 교수는 아들 일곱을 둔 '아들 부자(富者)'다. 부인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이 둘, 2002년 5월부터 천사원과 인연을 맺으며 '가슴으로 낳은' 아들이 다섯이다. 처음 한 명이었던 천사원 아들은 어느새 다섯으로 늘었고, 네댓 살 꼬마들이 이제 어엿한 중·고생이 됐다. 예전과 달리 정 교수에게 일상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에게 친근한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아빠, 우리 아빠."
 

    지난 9일 오후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에서 정연앙(앞줄 왼쪽에서 둘째) 교수와 제자들이 봉사활동 사진들을 담은 앨범을 살펴보며 얘기 나누고 있다. 정 교수는 2002년부터 서울 은평구 은평천사원의 아이 다섯 명을 아들처럼 돌봐오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에서 정연앙(앞줄 왼쪽에서 둘째) 교수와 제자들이 봉사활동 사진들을 담은 앨범을 살펴보며 얘기 나누고 있다. 정 교수는 2002년부터 서울 은평구 은평천사원의 아이 다섯 명을 아들처럼 돌봐오고 있다. /성형주 기자
가정 형편이 어려워 힘겹게 대학을 다녔던 정 교수는 유학 생활을 마친 후 '어려운 아이들을 돕자'는 대학 시절 결심을 지켰다. 아이들에게 단순히 '후원자 선생님'으로 남는 게 싫어 아이들을 자주 자기 집으로 불러 보살폈다. 처음엔 낯설어하던 아이들이 정 교수 가족을 진짜 자기 가족처럼 여기게 됐다. 정 교수의 친아들 역시 아이들을 동생으로 받아들였다. 정 교수 집을 자기 집처럼 편안하게 여기게 된 아이들은 보육원으로 돌아갈 때마다 "엄마 아빠, 저 보육원에 잠깐 다녀올게요"라고 말한다. 정 교수는 "아이들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뿌듯하기도 하고 가슴이 찡하기도 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스승의 따뜻하고 큰 사랑은 중앙대 제자들 마음에까지 번졌다. 아이들을 후원하기 시작하면서 정 교수는 자신이 담당하는 인성교육 관련 교양과목에 봉사활동 과정을 넣었다. 학생들과 봉사의 기쁨을 나누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기에 성적에도 반영하지 않고 원하는 사람만 참석하게 해, 초기 정 교수와 천사원을 꾸준히 찾은 학생은 10여명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이 학생들은 '연앙과'라는 모임을 만들어 정 교수가 해외출장 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에도 자발적으로 장애인들을 도왔다.
제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기특하게 여긴 정 교수는 연앙과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마칠 때마다 매번 저녁을 사줬다. 정 교수의 세심한 관심에 감동한 학생들은 2006년 스승의 날을 맞이해 그에게 봉사활동 모습을 담은 사진 앨범을 선물했다. 학생들이 손수 만든 앨범엔 정 교수와 제자들이 함께한 선행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정 교수는 제자들의 마음을 받아 천사원 아이들에게 돌려줬다. 2011년 크리스마스에 아이들의 10년간 모습을 담은 '성장 앨범'을 만들어 건넨 것이다.
요즘 정 교수는 연앙과 학생들에게 "시간 좀 내달라"고 부탁한다. 함께 차를 마시며 진로·고민 상담을 해주기 위해서다. 연앙과 대표 박준형(22·경영학부 4년)씨는 "천사원 아이들에게나 연앙과 학생들에게나 정 교수님은 '선생님' '교수님'이 아닌 '아버지'"라고 말했다. '왜 끊임없이 나이 어린 사람들을 보살피느냐'는 물음에 정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연앙과를 보세요. 사랑은 처음엔 조그맣더라도 나중엔 반드시 커다랗게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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